날적이 게시판
 제     목  노숙
 작성일시  2013.11.14 12:07:50  작성자명  방자  조 회 수  1,773

지난 봄부터 일종의 프로젝트 사업을 하기로 하고 사업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왔습니다. 아직 마무리 되지 못했지만 일단락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깜량을 벗어나는 사업임에는 분명했지만 보고서를 통해 전달해야 하는 취지가 있었기에 부족하더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주말도 잘 없었고 여름, 가을에 철야도 많이 했습니다. 당초 9월 초 마감했어야 하는 사업이었지만, 아직도 마무리 수정작업을 하고 있고, 또 뒤 늦게 자료를 제출한 곳이 있어서 추가 작업도 해야 합니다. 어쨋거나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었습니다. 마음에 큰 부담 하나를 내려 놓고 있습니다.

 

그 사업 때문에 미루어 둔 다른 사업들과 일정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좀 한가해 지려나 싶었지만 밀린 일정들 처리하느라 또 꼬인 업무들 풀어 내느라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노동자대회, 우리가 꼭 참가했었던 그 노동자대회 참가하느라 비 맞고 간만에 뛰어다니고 하여 엊그제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월요일 저녁에 좀 추웠는데 전달지 돌리느라 몸살이 났습니다.

 

그런 다음 날에는 과천 청사 앞에 차려 진 농성장을 지키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빠진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된 농성이어서 빠지겠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빠지면 후배 혼자서 노숙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농성 취지는 대략 이렇습니다.

 

목, 어깨, 팔, 손, 허리, 다리, 무릎, 발목 등등 우리 몸에 근육, 뼈, 신경 등과 관련된 질환을 근골격계질환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골병이라고 말하는 질병이죠. 갑자기 힘을 쓰다가 삐끗하거나 '억'하면서 다치는 것도 있고 오랜 기간동안 누적되어서 서서히 악화되기도 합니다. 갑작스런 힘의 작용으로 발생한 근골격계질환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근골 질환은 퇴행성으로 진단됩니다. 누적 질환이다 보니, 나이 들면서 발생한다는 진단이 아니나올 수 없는 거죠.

 

이런 근골질환이 일(업무) 때문에 더 많이, 더 빨리 나빠졌다면 이는 산재 보상 대상이 됩니다. 바꿔 말하면, 일 때문에 더 많이 더 빨리 나빠졌다는 걸 인정받아야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려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우선 조사가 되고, 그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즉 업무상질병인정인지를 평가하는 위원회(질판위, 질병판정위원회-산재 처리하는 근로복지공단 산하 기구, 지역에서 노사정이 추천한 의사 등 전문가 들로 구성됨)에서 조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산재신청 노동자의 질병상태, 근무 이력 등을 확인해서 다수결로 판정합니다.

 

그 질판위 소속 위원들은 약 2~3쪽짜리 보고서를 바탕으로 산재로 인정할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제가 노무사로서 산재신청 할 때는 보통 1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판정위원들은 2~3쪽 짜리만 봅니다. 다른 자료는 위원들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앞으로는 위원들에게 자료 전부를 공개할 거라지만 일단 지켜봐야 겠습니다.).

 

위원회는 한번에 6명의 위원들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그 한번에 적게는 15건 많게는 20건(평균적으로 16~17건)을 약 1시간 30분~2시간 사이에 판정합니다. 즉 위원들은 2~3쪽 짜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건 당 10분 만에 산재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많이들 회사 측과 다툽니다. 산재가 인정되면 해고 금지가 적용되지만, 산재가 불인정되면 각종 병원비 부담, 치료 기간 일 못한 부담, 앞으로 후유 증상에 대한 자기 부담에 더하여 무단결근이나 휴직기간 도과로 해고되는 경우가 매우 많죠. 산재로 노동능력이 떨어진 노동자가 재취업하기는 더 어렵고요, 누적질환인 근골질환은 중장년 이후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재취업이 더더욱 어렵습니다. 산재 불승인으로 한 가정이 몰락하는 걸 종종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관건은 조사가 얼마나 충실한가입니다. 현재 질판위원들이 받아 보는 2~3쪽 짜리 보고서에는 근골질환 관련, 신체부담이 1~5등급으로 나눠져, 1등급은 신체부담 높음, 3등급은 중간(1/2), 5등급은 신체부담 없음으로 분류했습니다. 아마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 보고서에는 3등급(1/2 부담됨)으로 나옵니다.

 

자, 그렇다면 질제로 작업현장을 조사해서 3등급(1/2부담)으로 평가되었을까요? 실제 현장조사는 16%에 그칩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지난 3년 간 노사정 테스크포스 팀(TFT)이 가동되어 산재 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직업성 암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때 주로 보도된 것은 직업성 암이었지만 TFT를 통해 이뤄 낸 성과는 암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TFT에서 노사 양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근골격계 관련 조사용지(조사시트) 만드는 연구용역을 줬고, 그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총에서 반대했습니다. 자신들이 추천한 전문가가 포함되어 만든 결과물이지만... 그래서 2차 보고서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총은 여전히 반대합니다.

 

우선, 왜 반대할까? 그 다음으로 경총이 반대한다고 연구용역 결과를 시행하지 않는 처사가 맞는가? 를 살펴보면

 

새로 나온 조사시트는 완전부담, 2/3부담, 1/3부담 이런 식의 점수제를 채택했습니다. 노동부가 요구한 쉽고 빠른 조사에 유용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신체부담정도를 점수제로 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계가 반대하고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연구용역결과가 나오니 경총이 점수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점수제가 산재승인율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경총이 반대하고 노동부가 끌려가는 모습, ...

 

우리는 비정규직법 반대했지만, 정리해고 입법 반대했지만, 파견제도 반대했지만, 타임오프, 창구단일화 기타 등등 수 많은 제도 개악을 반대했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끌려다니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과천 청사 앞에서 노숙 농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에 얘기한 대로, 몸살이 나서 지난 화요일, 올 겨울들어 가장 추웠다는(하필이면..._) 그 날 노숙 농성을 할고 마음먹기 힘들었다는...

 

노숙농성을 하면서 39도짜리 공부가주를 마셨습니다. 달데요. 몸도 따뜻해지고... 몇 겹의 침낭과 아무튼 겹겹이 쌓여서 새벽 1시 즈음 잘 들어서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두들겨 맞았던 것 같던 몸도 가뿐해 지고 몸상 기운에 으슬으슬 춥던 것도 사라지고 지끈 지끈하던 두통도 사라지고... 신기하데요. 맨날 소주만 먹다가 술 바꿔 먹으니 약주가 된 듯.

 

결국 술 작 퍼 먹었단 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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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2013.11.15 글 잘 보고 있어요!^^ 삭제
재현 2013.11.15 술을 즐겁게 마시고 오래동안 잠을 잘 자면 힘들던 몸이 모두 풀리는 것 같더군.. 나도.. 삭제
방자 2013.11.15 어제 소주 퍼 먹고 오늘 어케 출근은 했지만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는... 아~후 죽갔다. 삭제
재현 2013.11.18 즐겁게 마시고 푹 자되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마셔야지.. 삭제
김설화 2013.11.19 음.. 약주라.. 나로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음 ㅋㅋ;; 아무튼 약주? 마시고 괜찬아 졌다니 다행이에요. 삭제
방자 2013.11.20 어젠 와인 먹었는데요, 나도 손여사도 맛이 갔다는... 삭제
재현 2013.11.21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이 문제인 것이여.. 삭제
방자 2013.11.21 그렇죠, ㅎㅎ 삭제